1. 서 론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도서, 사진, 회화 등의 기록 유물은 종이, 섬유, 목재를 비롯한 다양한 유기질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의 경우, 국가적으로 중요한 대통령기록물 및 공공·해외기록물 등은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의 특수 서고에서 통합 관리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2월 31일 기준, 지류(종이) 기반의 일반 문서류가 전체 소장 기록물의 68.1%를 차지하여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냈다(National Archives of Korea, 2020). 이처럼 비전자기록물의 핵심을 이루는 종이는 식물성 섬유질인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 및 각종 화학 첨가제로 이루어져 있어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기록물의 열화 원인은 크게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요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리적 손상은 주로 취급 부주의나 외부 충격으로 인해 지면이 찢어지거나 제본이 파손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화학적 손상은 열과 빛 등의 에너지원에 의해 산화 및 산·알칼리화가 진행되면서 재질이 변질되는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적 손상은 곰팡이나 세균 같은 미생물, 그리고 해충 및 설치류에 의해 야기된다. 특히 미생물과 해충은 종이 성분을 영양원으로 삼아 재질을 직접 분해할 뿐만 아니라, 대사 과정에서 분비하는 배설물과 색소로 인해 유물 표면에 영구적인 얼룩을 남겨 원상복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Kim et al., 2018).
공공기록물은 통상 30년 이상의 장기 보존을 목표로 하므로, 서고 입고 전 선제적인 소독 처리를 통해 유해 생물로 인한 피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기록물의 영구 보존을 위해서는 정기적인 상태 점검과 서고 내부의 청결 유지, 공기 중 부유균 모니터링 및 제어, 오염 기록물의 적기 소독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강력한 휘발성과 우수한 침투력을 지닌 메틸브로마이드(Methyl Bromide)가 토양 소독, 식물 검역은 물론 서고 및 목재, 문화재의 훈증 소독제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Robbiola et al., 2015;Kim et al., 2016). 그러나 성층권에서 분해될 때 발생하는 브롬(Br) 원자가 프레온 가스보다 오존층을 훨씬 더 심각하게 파괴하고, 인간의 신경계에도 치명적인 독성을 유발한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1992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용이 규제되었다(UNEP, 1987). 이에 따라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미생물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친환경·안전 대체 약제의 도입이 시급해졌다.
하지만 국가가 보유한 방대한 양의 기록물을 전수 소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오염된 기록물을 정확히 선별하여 처리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미생물 오염이 극심한 경우에는 육안으로도 곰팡이나 색소 침착을 식물할 수 있으나, 초기 부착 미생물의 대부분은 육안 식별이 불가능하여 오염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가기록원의 미소독 서고를 대상으로 종이 기록물의 표면부착미생물을 조사한 결과, 유해균이 다양하게 검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기 보존된 문서 내에서도 균주들이 여전히 생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National Archives of Korea, 2020). 이는 해당 균들에 대한 소독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유물의 물리적·화학적 변형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부착 미생물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는 소독 기술의 확보가 요구된다.
에틸렌 옥사이드(Ethylene Oxide, EtO)는 고온·고습 환경에 취약한 의료기기나 종이 기록물, 건조 식품 등의 멸균에 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저온 화학 훈증제이다(Shin et al., 1989;Bae et al., 2020). 이는 미생물(세균, 포자, 진균 등)의 DNA와 단백질에 알킬화 반응(Alkylation)을 일으켜 세포를 파괴하는 원리를 가진다(Rutala and Weber, 2008). 이에 본 연구는 침투 가스로서 우수한 성능을 지닌 에틸렌 옥사이드를 활용하여, 실제 국가기록원 서고의 실내의 환경에서 보존되는 종이 기록물 표면에서 분리·동정된 유해 미생물에 대해 소독 효과를 검증하고자 수행되었다.
2. 재료 및 방법
2.1 미생물 시험 균주 배양 및 접종원 제조
시험용 공시 균주로는 세균 6종(Bacillus atrophaeus, Bacillus toyonensis, Micrococcus luteus, Niallia circulans, Paenibacillus glycanilyticus, Ralstonia pickettii)을 사용하였다. 이들 균은 앞서 시행된 기록물 부착 미생물 조사에서 분리 동정된 균들을 종합하여 종이 훼손에 유해성이 큰 특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National Archives of Korea, 2020). 세균은 TSA 배지에 획선으로 접종하여 30°C 암조건에서 3 일간 배양 후 자라나온 콜로니를 접종원으로 사용하였다. 1개의 단일 콜로니를 취하여 무균 50 mL 플라스틱 튜브에 담긴 20 mL Tryptic Soy Broth (BD Science, USA)에 접종하고 회전배양기(200 rpm/h)에서 18시간 배양 후 접종원으로 사용하였다. 세균 세포 농도는 멸균수로 희석 후 광학현미경과 페트로프-하우저 계수기(Petroff-Hausser counting chamber, Fisher Scientific Co.)를 사용하여 균수를 계수하고 균의 농도를 106 cells/mL로 조절하여 사용하였다.
2.2 미생물 접종용 종이 책자 준비
기록물 책자를 모사하여 미생물 접종에 사용될 모사 책자는 A4 용지 크기로 200페이지 분량의 책자를 제본하여 준비하였다. 모사 책자에 사용된 재질별 종이는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재질을 확인 후 구매하여 사용하였다. 준비된 접종용 책자의 50, 100, 150 페이지는 각각 표면 소독한 Class II 생물안전작업대에 펼쳐놓고 설치된 자외선등으로 15분 정도 각각 앞 뒷면을 살균 처리하여 접종에 사용하였다. 미생물 접종은 표면 살균된 페이지(50p, 100p, 150p)에 각각 접종하였다. 접종 위치는 각각 Fig. 1과 같이 2 cm × 2 cm의 정사각형 칸을 총 16개를 만든 다음 접종 직후, 소독 직후, 소독 후 1주, 소독 후 2주, 소독 후 1달 등으로 구분하여 분배하였다. 분배된 구획칸 중앙에 세균액을 마이크로 파이펫으로 3반복 접종하였다. 대조시료(control)로는 멸균된 증류수 50 mL를 맨 윗 칸에 접종하고, 다른 3개의 칸에는 공시균주 세균 배양액(~1 × 106 cells)을 50 mL씩 접종하였다. 접종한 부위는 연필로 표시하고 사진을 찍어두어 표면 세균 검출을 용이하게 수행하도록 조치하였다. 대조 시료는 세균 검출시 세균이 없음을 나타내는 시험군으로 활용하여 소독 후 세균이 사멸된 경우와 비교가 가능하였다.
2.3 산화에틸렌가스를 이용한 훈증소독
세균을 접종한 모사 책자의 소독은 국가기록원의 ‘기록물 소독 선별처리 기준’에 준수하여 수행하였다(National Archives of Korea, 2017). 대조군으로는 세균이 접종된 모사 책자를 소독시키지 않고 같은 조건으로 수행하였다. 소독을 위한 화학적 소독방식에 대한 기준·절차 검증 진행을 위한 소독업체를 A와 B 두 곳을 선정하여 소독 효과의 재현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소독은 Hygen-A(에틸렌 옥사이드 15%, HFC134a 85%) 혼합가스를 이용한 훈증 소독 방식을 적용하였다. 대상 모사 책자는 밀폐된 공간에서 25°C 이상, 24시간 훈증 처리를 진행하였다. 모사 책자와 함께 공시균(Aspergillus brasiliensis)을 배치하여 소독 후 소독 진행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2.4 소독 후 생존 세균 수 조사
소독된 모사 책자는 소독 직후 바로 밀봉 후 실험실로 가져와 소독 직후 시료 채취 후 밀봉하여 기록관으로 이송하여 서고에 비치하고 1주 후, 2주 후, 1개월 후 각각 해당 부위를 분석하였다. 접종 표면에서의 세균 분석은 2차에 걸쳐 진행하였다. 1차 시험은 3가지 종류의 종이 트레싱지(tracing paper), 백상지(fine print paper), 갱지(ground paper)로 제작하여 1종(Micrococcus luteus)의 세균을 사용하여 소독 효과를 평가하였다. 이 경우 모사 책자에 표시된 2 cm × 2 cm 구획을 접종 직후, 소독 직후, 소독 1주 후, 소독 1개월 후에 각각 잘라서 멸균된 증류수 20 mL에 5분간 침지하였다가 십진 희석법을 통하여 희석액을 3 반복으로 TSA 평판 배지에 도말 후 30°C에서 2일간 배양하여 자라나온 세균의 수를 콜로니 카운터로 계수하여 살아 있는 세균의 CFU 값을 구하였다. 2차 시험은 미농지(Mino paper), 중질지(medium print paper), 트레싱지(tracing paper), 신문지(newsprint paper), 백상지(fine print paper), 갱지(ground paper)로 만든 모사 책자의 50p, 100p, 150p에 접종된 5종의 세균을 조사하였다. 이 경우 접종 직후, 소독 직후, 소독 1주 후, 소독 2주후에 각각 2 cm × 2 cm 구획 면을 멸균한 면봉으로 스왈하여 세균을 닦아 낸 후 면봉을 25 mL 멸균 플라스틱 튜브에 담겨 있는 10 mL 0.1 M PBS buffer (pH 7.0)에 20분간 상온에서 침지하였다. 이 후 voltexing 한 다음 십진 희석법을 통하여 희석액을 3 반복으로 TSA 평판 배지에 도말하고 30°C에서 2일간 배양하여 자라나온 세균의 수를 콜로니 카운터로 계수하여 살아 있는 세균의 CFU 값을 구하였다. 소독 효과는 1차 분석의 경우 소독을 처리하지 않은 미처리 대조군과의 CFU 비교로 평가하였으며 2차 분석은 같은 책자에서 책자에 접종 후 바로 수확한 소독을 처리하지 않은 대조군과 CFU 비교로 평가하였다. 통계처리는 SPSS의 Student t-test를 이용하여 유의 수준에서 검증하였다.
3. 결과 및 고찰
소독업체 A와 B 모두 소독작업 진행 후 공시균(Aspergillus brasiliensis)의 사멸을 확인하여 소독작업이 이상 없이 진행되었음을 확인하였다. 1차 산화에틸렌 훈증소독 후 훈증소독 처리한 기록물 모사 책자와 M. luteus 세균만 접종하고 훈증소독을 하지 않은 모사 책자를 소독 직후, 소독 7일 후, 30일 후에 소독 효과를 검증하였다. A 업체에서 소독 직후, 소독 모사 책자와 미소독 모사 책자간의 M. luteus 세균 농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3 종류의 종이 모두 소독한 책자에서는 생존한 세균이 존재하지 않아 100% 사멸율을 보였다(Fig. 2). 소독 후 7일, 30일 후에는 미소독 모사 책자에서 세균은 일정 수준 더 감소하였다. 종이간의 그리고 페이지 간에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였지만 전체적으로 이렇듯 소독한 모사 책자에서 세균 소독 효과는 50p, 100p, 150p 모두 페이지의 깊이에 차이가 없이 세균이 사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B 업체에서 소독 직후, 소독 모사 책자와 미소독 모사 책자간의 세균 농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도 3 종류의 종이에서 모두 M. luteus 세균은 생존하지 못하였다(Fig. 2). 미소독 모사 책자의 세균 농도 또한 1주 후 일정 분량 감소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 모사 책자에 오염시킨 M. luteus 세균에 대한 산화에틸렌 훈증소독 효과는 유의한 수준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소독 후 1주일, 1개월 동안 미소독 모사 책자와 소독 모사 책자를 서고에서 비치하였을 때 세균의 새로운 생육 증식은 없었다. 미소독 모사 책자에 존재하는 세균 수도 접종 직후보다 더 감소하였다. 이는 자연 감소도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소독 효과는 서고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사료된다.
미생물은 종에 따라 소독 약제에 대한 내성이 다를 수 있다(McDonnell and Russell, 1999). 이에 따라서 국가기록원에서 보존 중인 종이로된 미소독 기록물의 표면에서 분리동정되어 유해한 세균으로 분류된 Bacillus atrophaeus, Bacillus toyonensis, Niallia circulans, Paenibacillus glycanilyticus, Ralstonia pickettii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산화에틸렌의 소독효과가 있는지 시험하였다. 6종류의 종이 재질로 만든 모사 책자 모두에서 접종 직후 소독하지 않은 곳에서는 이들 5종의 세균이 모두 검출되었지만 소독한 곳에서는 세균이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Figs. 4~9). 흥미롭게도 세균의 종에 따라 소독하지 않은 모사 책자 종이에서 세균 수가 다르게 나타났다. 이는 6종의 종이 표면에 이들 세균이 부착하는 특성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따라 스왈하여 세균을 검출하는데 있어서도 종이 재질의 특성과 세균의 부착 특성이 함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6종의 모사 책자에서 소독 후 1주, 2주가 지나도 살아 있는 세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는 서고의 환경조건에서 늦게라도 각 세균이 소독으로 인해 받은 세포 손상을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 M. luteus로 실험한 결과(Figs. 2~3)와 일치한다. 소독 처리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부착된 세균은 종이의 재질이 다르더라도, 세균의 종이 다르더라도, 책자 내에서 부착한 위치(책 내부 어느 곳이든)가 다르더라도 산화에틸렌 훈증에 민감한 바 소독 효과가 좋음을 시사한다.
해외의 국립 아카이브에서도 종이 문서의 대량 살균을 위해 에틸렌옥사이드(EtO)를 빈번하게 사용하였다(Ballard and Baer, 1986). Jeong et al. (2015)은 에틸렌 옥사이드 + HFC134a, 에틸렌 옥사이드 + CO2 등 2종류의 훈증제 처리군을 가지고 지류(종이)에 대한 훈증 후 성상 변화를 조사하였으나 성분상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이 물질은 종이나 골판지 같은 다공성 재질은 가스를 흡착했다가 느리게 방출하여 작업자에게 장기적으로는 유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존재하다(OSHA, 1984;Egel et al., 2014). 아직까지 크게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용하지만 유해하지 않은 수준 이하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고 환경에 얼마나 많이 방출되는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더불어 기록물의 훼손 없이 친환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4. 결 론
본 연구는 에틸렌 옥사이드 기반 가스 훈증법이 종이 기록물 표면에 부착된 다양한 유해 세균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다. 종이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에 곰팡이 오염이 있으면 변색, 부식, 분해 등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곰팡이에 대한 소독 효과도 검증되면 좋을 것이다. 친환경적이고 기록물 손상이 적은 본 소독법은 국가기록원 등 문화재 보존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다양한 문화재 소재에 대한 소독 효과 및 흡착과 방출 특성에 관하여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